영화 감독을 분류하는 하나의 방법은 ‘스토리 중심인가, 스타일 중심인가’입니다. 전자는 이야기의 흐름과 인물의 감정선, 내러티브 완성도를 중시하며, 후자는 화면 구성, 색감, 편집, 미장센 등 시각적 연출을 통해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물론 대부분의 감독은 두 요소를 함께 활용하지만, 그 균형과 우선순위는 작품에 따라 명확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번 글에서는 ‘스토리 위주 감독’과 ‘스타일 위주 감독’의 차이를 감정 표현, 구조 설계, 연출법을 중심으로 비교해 살펴봅니다.
1. 감정 표현 – 내러티브 전개 vs 시청각 자극
스토리 중심 감독은 인물의 감정을 이야기 속 사건과 관계의 전개를 통해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는 두 인물의 대화만으로 감정의 흐름을 쌓아갑니다. 이 감정은 사건보다 '시간'과 '관계의 변화'에 따라 누적되며, 관객은 인물의 정서를 함께 겪게 됩니다.
반면 스타일 중심 감독은 감정을 시청각 요소로 전달합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는 대사보다 색채, 조명, 사운드로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합니다. 감정은 이야기의 결과라기보다는, 연출 요소 자체가 감정의 매개가 됩니다. 또한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인물의 감정보다 장면의 대칭, 색감, 리듬이 정서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 구조 설계 – 인과적 구성 vs 비선형·모듈형 서사
스토리 중심 감독은 기승전결, 혹은 3막 구조에 근거해 인과관계 기반의 내러티브를 전개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은 각각 복잡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인물과 사건의 연결고리를 중심으로 서사를 탄탄하게 구축합니다. 플롯의 명료성과 흐름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돕는 핵심 장치입니다.
반대로 스타일 중심 감독은 비선형 구조, 에피소드 서사, 서사의 해체 등을 통해 시간과 내러티브를 실험합니다.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은 시간순이 아닌 장면 배열로 구성되며,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는 챕터 형식으로 감정을 분절시킵니다. 이들은 이야기의 개연성보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감각적 연결을 중시하며, 관객의 해석을 유도합니다.
3. 연출법 – 투명한 카메라 vs 존재감 있는 연출
스토리 위주 감독은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카메라의 존재감을 줄이는 방식으로 연출합니다. 앵글, 조명, 편집은 주로 ‘보이지 않게’ 설계되어 있으며, 사건에 집중하게 만드는 투명한 방식이 선호됩니다.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극사실주의적 연출로 인물의 사회적 고통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반면 스타일 중심 감독은 연출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미장센 자체가 의미가 되고, 카메라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닌 하나의 ‘감독적 시선’으로 작용합니다. 파올로 소렌티노의 <그레이트 뷰티>,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배우의 움직임과 세트 디자인, 조명까지 연출자의 의도가 드러나며, 시네마의 형식을 강조합니다. 이 연출 방식은 관객에게 ‘보는 행위’를 의식하게 만들며, 현실보다 더 연출된 현실을 경험하게 합니다.
4. 대표 감독 비교
스토리 중심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봉준호, 리처드 링클레이터, 클로에 자오 이들은 명확한 플롯과 감정 중심의 이야기를 추구하며, 메시지와 캐릭터 중심의 전개가 특징입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조화시키는 데 강점을 보입니다.
스타일 중심 감독: 웨스 앤더슨, 고다르, 타란티노, 구스 반 산트 이들은 장면 구성, 색채 설계, 시간의 재배열 등으로 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며, 서사의 규칙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형식 자체가 메시지가 되는 감독들입니다.
균형이라는 제3의 방향
흥미로운 점은, 현대의 많은 감독들이 이 두 방향성을 절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나 <헤어질 결심>에서 극적인 서사와 스타일리시한 연출을 동시에 구사하며, 드니 빌뇌브 역시 <컨택트>에서 깊이 있는 스토리와 철저한 시각미학을 결합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스토리냐 스타일이냐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일관된 태도와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