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는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불리며, 매년 전 세계의 예술 영화들이 몰려드는 장입니다. 하지만 모든 걸작이 칸에서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영화는 당대의 심사 기준, 정치적 맥락, 장르에 대한 편견 등으로 인해 수상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후 재평가되며 명작으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본 글에서는 칸에서 외면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걸작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수상 실패와 예술적 가치를 둘러싼 복합적인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1. <시민 케인>의 부재를 닮은 전설 – <택시 드라이버> (1976)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는 지금은 누가 봐도 고전이자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1976년 칸 영화제에서는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영화가 상영되었을 때 폭력성과 극단적 반사회성 때문에 일부 심사위원과 관객으로부터 강한 거부감을 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결국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사실상 ‘비판 속 수상’이라는 분위기였으며, 이후 몇 년 동안은 칸 내부에서도 “부적절한 수상”이라는 자성적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현재 <택시 드라이버>는 영화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작품으로 재조명되고 있으며, 이는 칸이 얼마나 시대의 흐름보다 앞서거나 때로는 뒤처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무관의 거장 –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 <풀 메탈 자켓> 등 숱한 명작을 남겼지만, 칸 영화제와는 유독 인연이 닿지 않았던 감독입니다.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혁신적인 시각효과와 철학적 세계관으로 현대 영화의 지형도를 바꿔놓은 작품이었지만, 칸에서는 경쟁 부문 초청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당시 칸은 정치적, 인문학적 메시지가 강한 드라마 중심의 작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SF나 실험적인 구조의 영화는 ‘예술성 부족’이라는 선입견으로 배제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큐브릭의 작품들이 영화학교에서 교과서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칸 영화제가 당대 기준에서 벗어난 영화에 대해 갖는 보수성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3. 비평가의 냉소 속 명작으로 부활 – <말할 수 없는 비밀> (2007)
주걸륜의 감독 데뷔작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지만, 경쟁 부문에서는 배제되었고 비평가들로부터 ‘감상적’이고 ‘진부하다’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시아권 젊은 관객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음악과 연출, 감정선 모두에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당시 칸 심사위원단은 아시아 청춘 멜로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과 지나치게 유럽 중심의 예술 영화 기준을 고수하며 이 작품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화는 한류 콘텐츠, 아시아 로맨스 장르의 새로운 전형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리메이크 요청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4. ‘당대의 오해’ – <도그빌> (2003)
라스 폰 트리에의 <도그빌>은 무대처럼 구성된 세트, 연극적인 연출, 극단적인 인간 심리 묘사로 인해 당시 관객들로부터 극단적인 호불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고,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도그빌>은 이후 사회 시스템에 대한 알레고리,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적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철학적 깊이를 인정받으며 ‘영화보다 철학에 가까운 작품’으로 재조명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실험성과 형식미로 인해 예술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 필수 감상작으로 꼽힙니다. 당시 수상이 불발된 것은 시대가 작품을 따라가지 못한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5. 현실 정치의 그림자 – <페르세폴리스> (2007)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는 이란의 여성 감독이 이란 혁명과 여성 억압 문제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낸 작품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지만 황금종려상은 받지 못했습니다. 당시 영화의 메시지와 형식은 매우 독창적이었지만, 일부 심사위원이 “이란 정부와의 외교적 충돌을 우려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결국 영화는 예술성과 정치적 상징성 모두를 갖추고 있었지만, 외교적 맥락에서 수상하지 못한 사례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페르세폴리스>는 이후 유엔 인권 포럼, 여성 영화제 등에서 집중 조명되며 여성 서사의 획기적 사례로 인정받았습니다.
수상이 전부는 아니다, 칸은 해석될 뿐이다
칸 영화제가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무결한 기준은 아닙니다. 예술성과 시대정신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으며, 당대의 비판과 외면 속에서도 살아남아 뒤늦게 ‘명작’으로 복권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오히려 칸에서 수상하지 못한 영화들이 예술적 생명력을 더 길게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영화팬이라면 수상 여부보다도, 작품의 진심과 예술적 야심을 읽는 눈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